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이거즈는 어떻게 다시 강팀이 되었나 (문단 편집) ==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 [youtube(y-Rz-1972Sg)][[파일:taeogang.png]]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위에 나온 수많은 기자들의 대세에 편승했던 기사들은 모두 [[설레발]]이 되었다. 원래 성적이 나빠지면 뭐든지 이유를 찾아 욕하는 사람들의 속성이 드러나는 대목. 팬들은 처음에는 칭찬하던 트레이드를 부진의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SK와의 [[김상현, 진해수 ↔ 송은범, 신승현 트레이드|트레이드]]를 통해 팀 충성도가 강했던 김상현과 사고로 인한 부친상으로 멘탈이 흔들렸던 진해수를 내보내는 것을 보고 KIA 선수단 사이에 동요가 일어나서 상승세가 꺾였다고 한다. 실제로 트레이드 전까지 17승 1무 8패를 기록했던 KIA는 트레이드 이후 5월 7일부터 145일의 기간 동안 32승 2무 62패, 승률 .341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참고로 KIA가 단독 8위로 추락한 9월 27일까지 최하위 [[한화 이글스]]의 시즌 승률은 .325였고, 같은 기간 (5/7~9/27)으로 한정하면 한화의 승률은 33승 1무 60패로 .355가 되니 KIA는 5월 7일 이후만으로 비교하면 시즌 내내 화나 이군스, 꼴칰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그 시즌의 한화보다도 못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거꾸로 한화는 9월에는 승률을 살짝 올렸으니 사실상 평행으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트레이드 후 한 달 정도 지난 6월 8일부터 20일까지는 9연승을 달리면서 리그 3위에 안착해 팀의 분위기가 좋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트레이드 때문에 팀이 망했다는 소리는 없었다. 또 자기 팀의 선수가 트레이드 되었다는 이유로 프로 선수가 남은 리그의 대부분인 5개월 동안 자기 성적과 연봉을 버려가면서까지 침울해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며 이는 오히려 KIA 선수들을 욕하는 꼴밖에 안 된다. 그런데 5월 7일에 금방 복귀할 것만 같았던 김주찬은 복귀가 예상보다 늦어졌고, 그 와중에 [[김원섭]]은 부상으로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으며, [[김상현(1980)|김상현]]이 트레이드로 떠나 비어 있는 자리에 들어올 [[신종길]]마저 부상으로 잠시 2군에 내려갔고 [[이용규]]는 어깨 부상으로 외야 수비를 잠시 쉬었다. [[나지완]]은 체력 문제 때문에 지명타자로 출전하면서 선수 과잉으로 봤던 외야진은 오히려 2군에서 선수를 콜업해와야 할 정도로 허약해졌다. 그리고 김상현을 보낸 이후 KIA의 타선은 마치 미리 짜기라도 한 듯 극도의 부진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특히 4월 한 달에만 6홈런 24타점을 쓸어담았던 [[최희섭]]은 이후 4개월 동안 '''5홈런 18타점'''에 그쳤다. 게다가 선동열 감독이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경기 운영을 보이면서 "선동열이 삼성을 우승시킨 것이 아니라 삼성이 선동열을 우승시켰다"는 삼성 팬들의 주장이 재조명을 받았고, '류중일 숟가락론'을 내세우던 일부 KIA 팬들마저 후회하며 선동열의 경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KIA가 계속 영원한 [[웃음후보]]로 남기를 원하는 타 팀의 팬들은 대동단결하여 '''선동열 KIA [[종신감독]]'''을 외쳤다. 그래도 6월 8일부터 20일까지 9연승을 달리는 등 반전의 불꽃을 태우며 3위에 안착했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특히 KIA의 마지막 퍼즐을 채워줄 것이라고 생각한 [[송은범]]의 부진은 예상보다 심각했고, 결국 송은범은 이적 후 FA 등록일수도 못 채우는 최악의 시즌을 보내게 되면서 FA 대박의 기회마저 날려버리고 말았다. 물론 송은범은 검증된 투수였기 때문에 팬들도 좋아했고, 선동열이 트레이드 시 송은범을 선택한 것이 틀렸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프로는 결과로 말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앤서니 르루]]는 시즌이 진행될수록 도저히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블론세이브를 반복했고 나머지 불펜진들도 시즌 초부터 변함없이 답이 없는 수준이었다. 그동안 KIA의 장점이었던 선발진도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는데, [[윤석민(투수)|윤석민]]은 [[타이중 쇼크]] 이후 구위를 회복하지 못하다가 결국 마무리로 뛰게 되었고, [[김진우(1983)|김진우]]와 [[서재응]]은 작년의 모습을 찾지 못했으며, 두 외국인 투수인 [[헨리 소사]]와 앤서니 르루 역시 부진했고 결국 앤서니 르루는 시즌 도중에 방출당했다. 그나마 [[양현종]]만이 부활하여 제 몫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나, 6월 말 삼성과의 경기 도중 갑자기 옆구리 부상이 도져 두 달 동안 아웃당했다. 양현종은 이후 승리를 전혀 추가하지 못해 6월 20일 9승을 올린 것이 시즌 최종 승이 되고 말았다. 부상 원인도 기가 막힌데, [[김상수(타자)|김상수]]가 때린 홈런 타구를 '''쳐다보다가''' 부상을 당했다고... 사실 이때부터 조금씩 하락하던 KIA는 더욱 빠르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여담으로 이날 양현종을 상대로 멀티 홈런을 기록한 김상수는 김거포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칼럼이 난 시점과 맞물려 [[LG 트윈스/2011년|2011년의 LG]]를 뛰어넘을 정도의 추락을 한 KIA는 우승 후보에서 웃음 후보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해 승패마진의 차이가 '''31'''로, 그때까지 '''KBO 역사에서 가장 큰 낙폭의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였다.[* 이후 최대 낙폭의 DTD 경험팀 타이틀은 2017년의 kt 위즈가 가져가게 됐는데 144경기에 최대 승패마진 차이가 50으로, 126경기에 승패마진 차이가 31이었던 2013년의 KIA 타이거즈를 뛰어넘은 것.] 2013년 9월 하순까지만 해도 4강 탈락은 이미 확정되었지만 그나마 7위 자리는 위태롭게 지키고 있었는데, 2013년 9월 27일에 NC가 승리하고 KIA는 무승부에 그치면서 7위 자리도 놓치고 단독 8위로 추락하게 되었다. 심지어 9위인 한화 이글스와는 승률이 꼴랑 4모 차이였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KIA의 2013년은 흑역사로 취급되었지만, 2017년에 불거진 [[KBO 리그 심판 최규순 금전요구 사건]]을 조사하는 도중에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09&aid=0003607421|2012~2013년]] 사이에 KIA가 최규순에게 돈을 보냈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이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친 박동희 기자의 공로를 생각하면 타어강의 저주는 본인도 의도치 않은 정의구현이 되어버린 셈이다. 결론은 돈 먹이고 8등을 한 사상 최악의 흑역사 시즌이 되어버린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